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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1월 뉴스레터> 우리가 세상의 ‘모래땅’이 될 수 있다면 - 김남희 (환경영향평가사 4기)
-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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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우리가 세상의 ‘모래땅’이 될 수 있다면
김남희
(환경영향평가사 4기)
오늘도 도면 위에서 길을 찾고, 빽빽한 텍스트 속에서 환경의 가치를 길어 올리느라 애쓰시는 우리 평가사회 동무들께 마음을 전합니다.
현장을 누비고 돌아와 먼지를 털어내며, 혹은 사무실의 노란 조명 아래서 보완서류와 씨름하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긋는 이 선 하나, 우리가 적는 이 문장 한 줄이 정말 세상을 바꾸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모래땅’의 존재를 떠올립니다.
모래땅은 겉보기에 그저 평범하고 때로는 척박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모래땅은 아주 숭고한 숙명을 지니고 있죠. 세상의 온갖 탁한 물과 오염된 것들이 자신을 통과하게 내버려 둡니다. 거칠고 불투명한 것들이 모래알 사이사이를 지나는 동안, 모래는 묵묵히 그 오염을 붙잡아둡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비로소 투명하고 맑은 물을 세상으로 돌려보냅니다. 사실 ‘모래땅’이라는 단어는 인터넷 세상에서 제가 즐겨 쓰는 닉네임이기도 합니다.
환경영향평가사라는 우리의 업(業)이 바로 이 모래땅의 마음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친 개발의 논리와 복잡한 이해관계가 우리라는 촘촘한 필터를 거치며 비로소 ‘지속가능함’이라는 맑은 물로 정화되는 것이니까요. 우리가 쏟는 고심 어린 시간들이 결국 이 세상을 맑게 거르는 가장 귀한 여과 과정인 셈입니다.
최근 전설적인 프로듀서 릭 루빈이 쓴 글에서 가슴에 남는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힘들게 얻은 능력은 규칙을 초월하여 온전히 나의 것이 된다.” 우리가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생소한 법령을 외우고, 선배들의 노하우를 훔쳐 배우며, 현장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에 당황하던 그 힘겨웠던 시간들 말입니다. 하지만 릭 루빈의 말처럼, 그 치열했던 ‘힘듦’은 어느새 우리 몸에 배어 규칙이나 매뉴얼 따위에 갇히지 않는 우리만의 고유한 전문성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가이드라인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그 가이드라인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최선의 답을 찾아내는 숙련자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함께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보길 제안합니다. 우리가 이미 단단하게 쌓아 올린 이 전문지식과 지혜라는 토대 위에, 전혀 새로운 재료와 방법을 과감하게 올려놓아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생태모방(Biomimicry) 기술을 빌려와 혹등고래 지느러미의 혹 구조를 풍력발전기 날개에 적용해 소음과 진동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저감대책을 적용하기 혹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수십 년간의 기상 데이터와 생물 이동 경로를 시뮬레이션하여, 서류상의 예측을 넘어 실제 생태계 변화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것이죠. 매번 반복되던 조사 방식에 이런 낯선 도구를 접목하고, 딱딱한 보고서의 틀을 깨고 시각적 예술이나 인문학적 통찰을 한 방울 섞어보는 건 어떨까요? 이미 익숙해진 재료들 위에 이런 새로운 시도들을 얹었을 때 일어날 화학반응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무미건조했던 일상이 다시금 설레기 시작할 것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방법론이 우리의 숙련된 기술과 만나는 순간, 환경영향평가는 단순한 업무를 넘어 세상을 치유하는 하나의 ‘작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서류를 만드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을 맑게 정화하는 살아있는 모래땅이며, 자신만의 힘으로 규칙 너머의 가치를 창조해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마주하는 업무가 조금 무겁게 느껴지더라도, 우리가 거른 이 거친 물이 다른 이들에게 소중한 물이 될 것이므로, 그 과정 속에 여러분만의 새로운 재료를 섞어 넣는 즐거움이 늘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말을 빌려 우리를 응원해 봅니다. ‘오늘 꾸는 꿈이 위로가 되고, 내일 맞을 아침이 용기가 되기를!’





